[article] 바이러스성 성병_ 콘돔도 60%밖에 못 막는다


[한국일보 2006-04-04 19:12]기획취재팀=고재학(팀장)'조철환'이동훈'박원기 기자news@hk.co.kr



회사원 A씨(32)는 최근 말 못할 고민이 생겼다.


성기 주위에 물집이 생기고, 찌릿찌릿한 통증과 견디기 힘든 가려움증이 느껴졌다.
점심 때 시간을 내 일부러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비뇨기과를 찾았다.
헤르페스(HSV) 성병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왔다.
일주일전 회식 후 술김에 2차까지 간 생각이 번쩍 들었지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진료한 의사에게 “콘돔을 사용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기냐”고 물었더니,
“콘돔을 써도 HSV 예방률은 60%에 불과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또 “증상만 완화될 뿐 HSV는 평생 당신 몸에 잠복,
배우자에 전염될 가능성이 높으니 조심하라”는 경고까지 받았다.


성병이 콘돔을 넘어서고 있다.
콘돔으로도 완전 차단이 어려운 바이러스성 성병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국회 보건복지위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에게 제출한
‘2001년 이후 우리나라 성병 발생 추이’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남성들에게 발생한 성병 중 바이러스성의 비중이 5배나 높아졌다.


정부는
임질, 매독, 연성하감, 클라미디아 감염증, 비임균성 요도염, 성기 단순포진(HSV),
첨규콘딜롬(성기 주변에 사마귀를 일으키는 HPV의 일종) 등
7가지 성병을 3종 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HSV와 HPV는 바이러스성이고
나머지는 세균성 성병이다.


보건소와 병ㆍ의원 등 전국 500여개 의료기관이
2001년 질병관리본부에 ‘남성에게서 발병한 성병’으로 보고한 건수는 총 2만3,284건이었으며,
이 중 바이러스성은 2.62%(610건)에 불과했다.
대표적인 세균성 질병인 임질이 61.5%(1만4,338건)로 가장 많았다.
임질은 콘돔으로 거의 완벽하게 예방되고, 완치도 가능하다.


그러나
2005년 지난해엔 성병 분포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전체 성병 보고건수(9,368건)는 2001년의 40%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HSV와 HPV 발병건수는 1,138건으로 두 배가 됐다.
전체 성병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4년 전의 5배인 12.14%를 기록했다.


세균성 성병의 급감과 바이러스성 성병의 급증이 동시에 맞물려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의 원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콘돔을 주목한다.


서울의료원 최범 산부인과 과장은
“크기가 1~2마이크로미터(㎛ㆍ100만분의 1미터)인 세균성 성병은
콘돔 사용이 늘면서 빈도가 현격히 줄고 있지만,
50~100나노미터(㎚ㆍ10억분의 1미터) 수준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성병은
예방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분당차병원 이찬 교수도 “HPV와 HSV의 콘돔 예방률은 통계상 60~70% 정도”라고 말했다.


바이러스성 성병의 원천은 성매매 여성으로 추정된다.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콘돔 사용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젊은 남녀의 부담 없는 성관계가 늘었는데도
세균성 성병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성매매 여성의 바이러스성 성병 감염률이 일반 여성의 3배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역학적으로 ‘감염 고(高)위험군’으로 불리는 성매매 여성의 HSV 감염확률은
77%, HPV 감염률은 47%로, 일반 여성의 3배에 육박한다.


심각한 것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9ㆍ23조치) 시행 이후
성병 고위험군인 성매매 여성이 보건당국의 통제권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질병관리본부의 성병발생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남성의 바이러스성 성병 감염건수가 4년간 두 배나 늘었으나, 여성은 오히려 78%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2004년과 2005년의 크게 엇갈리는 남녀별 감염 추이는 당국의 감시체계에서
벗어난 성매매 여성들이 남성 고객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과거 집창촌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보건검사를 받아야 성매매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에서 성병관리를 하는 것 자체가 성매매특별법과 충돌하기 때문에 전처럼 강제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특히 9ㆍ23조치 이후 성매매 여성과 업주들에게 보건소는 기피 대상이다.
보건소를 찾는다는 것은 곧 성매매를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성매매 업자와 여성들의
모임인 한터 전국연합회 강현준 대표는 “경찰이 보건소의 진료기록을 근거로 성매매 업주들을
처벌하면서 업주들이 윤락여성들에게 아프면 개인병원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소별 검진 현황을 종합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성병발병 통계에서
2004년 이후 여성들의 발병건수가 크게 떨어진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현실에선 성병 확산 위험이 높아졌는데 통계 수치만 낮아진 것이다.


최근 남서울대 이주열(보건행정학) 교수가
성매매 집결지 여성 999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당국의 통계를 벗어난 성병 확산의 위험 징후가 뚜렷이 감지된다.
성병 검사 방법을 묻는 질문에 성매매 여성의 44.94%가 “아플 때 병원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정기적으로 보건소를 찾는다는 응답은 27.83%에 그쳤다.
또 성병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매우 그렇다”(30.1%),
“약간 그렇다”(35.4%), “그저 그렇다”(14.5%) 순으로 응답했다.


더욱 큰 문제는 집결지를 떠나 룸살롱, 안마시술소, 이발소 등으로 흘러간 성매매 여성들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9ㆍ23조치 이후 집창촌의 성매매 여성들은 52.3%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성매매를 포기한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음성적 성매매를 하고 있을 것이란 게 경찰의 추정이다.
이 경우 관리는 고사하고 성병 감염 여부 등도 포착 되지 않는다. 이주열 교수는
“9ㆍ23조치 이후 성매매 음성화로 성병 확산이 우려되지만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일반 여성의 HPV 감염률 (단위%)
_ 동아대병원 부산시민 1.000명 조사결과(자료: 2004년 5월 대한세포병리학회지)

24세이하 : 28.6 %
25~ 34세 : 13.2 %
35~ 44세 : 08.9 %
45~ 54세 : 11.0 %
55세이상 : 08.7 %
전체평균 : 10.4 %


# 성매매 여성의 HPV 감염율 (단위%) _ 2001년 9~12월 성매매 여성 417명 조사 결과 (자료: 국립보건연구원)

15~ 20세 : 65 %
21~ 30세 : 51 %
31~ 40세 : 43 %
41~ 50세 : 15 %
전체평균 : 47 %


# 늘어나는 남녀 바이러스 성병 (단위: 건, 자료: 한양대병원)

헤르페스 ........ : 2003년(156건) → 2004년(219건) → 2005년(238건)

HPV (성기 사마귀) : 2003년(130건) → 2004년(170건) → 2005년(172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