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

[article] 7초 동안만 기억하는 남자

캐나다의 CBC는 지난 달 24일과 28일
영국인 클리브 웨어링(66세)의 사연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클리브 웨어링은 단 7초 밖에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모든 일이 처음이며 모든 순간이 현재이다.

아내인 데보라가 편지가 왔는지 확인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욕실에서 나온다. 또 부엌에서 거실로 옮겨온다.
클리브에게는 그 모든 것이 감격적인 재회의 순간이다.
그로서는 사랑하는 아내가 소리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자꾸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아내가 나타날 때마다 그는 포옹하고 안도한다.

클리브 웨어링의 사연은 영국 언론들과 독일의 슈피겔 등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지휘자이자 BBC의 유능한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그에게 끔찍한 기억상실증의 재앙이 닥친 것은 20년 전의 일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 처음 만난 사람의 얼굴이나 전화 번호를 단 몇 초만에 기억한다.
새로운 정보는 과거의 기억을 지운다.
뇌 기능이 정상이라면 중요한 정보는 지워지기 전에 장기 기억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클리브 웨어링의 경우에는 그런 이전 과정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뇌 속에서는 정보가 저장되지 않고 곧바로 지워져 버리는 것이다.

클리브 웨어링은 아내 데보라만은 기억한다.
두 사람은 웨어링이 병을 앓기 11개월 전에 결혼을 했다.

1985년 클리브는 뇌염으로 2주간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었다.
다행히 깨어났지만 그는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다.
점차 기억력을 잃어가던 당시 모습은 아내 데보라를 절망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어느 날 클리브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깨어나면서도 잠이 들 때에도 쉬지 않고 울어 그는 계속 갈증을 호소할 정도였으며,
한 달 후에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보통 사람은 어느 정도 눈물을 흘린 후 감정이 정화되고 진정된다.
그러나 클리브는 얼마나 울었는지를 기억을 못해 계속 울어야 했던 것이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온 몸에 문신을 해 기억을 연장시키려 노력했다.
헌신적인 아내 데보라도 비슷한 방법을 썼던 것이 눈길을 끈다.
집안 곳곳에 '클리브의 방' '칫솔질하세요'등의 문구를 적어 놓았던 것.

클리브에게는 어제가 죽어 버렸다.
그는 영원히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며,
의학계에 보고된 기억 상실증의 가장 극단적인 환자이다.
그의 유일한 희망이자 안식은 그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아내 데보라이다.